Like a Twisted Doughnut
꽈배기 같은 글쓰기와 여행에 대하여

어디로 여행을 가든지 먹고, 달리고, 쓰는 행위를 지속하는 소설가 최민석. 여행 에세이와 픽션을 결합한 ‘여행 픽세이’라는 〈피치 바이 매거진〉의 새로운 시도에 흔쾌히 동참해준 그와의 필연적 만남.

인터뷰 피치 바이 매거진
사진 박신우
인터뷰이 최민석
* 〈피치 바이 매거진〉 창간호부터 4호까지 네 차례에 걸쳐 최민석 소설가의 여행 픽세이 ‘사건명’ 시리즈를 연재했다. 1편 사건명 ‘보고타 아침 이슬’, 2편 사건명 ‘트럼프 호텔’, 3편 사건명 ‘나폴리 렌터카’, 4편 사건명 ‘사랑의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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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여행 에세이는 논픽션에 속하고, 독자들도 이를 허구보다 실제 이야기라고 받아들입니다. 〈피치 바이 매거진〉에서 작가님에게 픽세이를 청탁했을 때 어떻게 쓸지 딱 떠올랐나요?
아뇨, 정말 힘들게 썼어요. 작가한테 청탁이 오면 당연히 반갑고 고마운 일이죠. 이전에도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작가가 글을 쓰게 만들어준다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거든요. 그것과 별개로 픽세이라는 건 픽션과 에세이 두 장르의 장점과 매력을 모두 담아야 하잖아요. 너무 픽션으로 치우치면 허무맹랑하고, 에세이처럼 겪은 일만 써버리면 픽션으로서의 재미가 없는 건데, 결국 이 두 가지의 면모를 어떻게 적절하게 배합하느냐가 어려운 일이죠. 막상 쓰려고 하니까 고민이 많아지더라고요. 일상에서 혹은 여행에서 흔히 겪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개연성을 갖춘, 어쩌다 한 번쯤은 일어날 법한 일을 그려보자, 그러면서 나만의 스타일을 구현해보자. 그런 생각으로 처음 두 편까지는 그럭저럭 썼는데, 3편부터 되게 힘들었어요. 4편은 정말 쥐어짜는 식으로 썼고. 결론은 픽세이라는 세계가 결코 만만한 세계가 아니다, 설득력을 갖춰야 하면서 재미도 담보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미묘하고 섬세한 영역이더라.
그리고 사실 분량도 좀 어려웠어요. 에세이에 픽션의 재미를 더하려면 단편 소설 분량(200자 원고지 80~100매) 정도는 되야 하는데, 잡지에 실리는 글이다 보니 가독성을 고려해서 50~60매 안에 기승전결을 담으려고 하니까 그게 또 어렵더라고요. 픽션과 에세이의 경계에 있다는 건 장르의 성격 때문에 힘든 거고 분량은 형식 때문에 힘든 거죠. 결국 내용과 형식이 다 어려웠다. 그 정도의 분량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게 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어요. 재미있었습니다. 지나고 나면 다 재미있고 좋은 경험인 거죠.

작품 속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소는 모두 직접 방문해보셨나요?
텍사스 빼곤 다 가봤고요.텍사스를 안 갔을 뿐이지, 플로리다, 미시시피, 테네시까진 가봤어요.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마 4편일 거예요. 그 글에서 포틀랜드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제가 직접 겪은 거고요. 실제로 포틀랜드의 에어비앤비 슈퍼 호스트 집에서 묵었는데, 달리기를 하러 간 공원에서 우연히 개 산책을 나온 주인을 만났어요. 돌아가는 길에 이런저런 얘길 하는데, “너 뭐하는 사람이니?” “나 한국의 작가고 책 쓰러 왔다”“그럼 너는 미국에 와서 글 써도 되겠네.” “그렇지.” “내 친구 중에 이탈리아 출신이 있는데, 미국 남자랑 결혼해서 현재 시민권자다. 그런데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어서 외롭다. 만나볼 의향이 있느냐, 결혼하면 시민권이 나온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난 결혼을 했고 신혼이라고 했더니 “그럼 주변에 너처럼 영어를 하고 미국에 와서 살아도 좋고 시민권을 따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소개를 해달라.”고 했어요. 거기서 영감을 받아서 마지막 에피소드를 쓴 거죠. 제가 예전에 교환학생일 때 만난 후배가 아직 미국에 살아요. 그 후배의 친구의 영어 이름이 케빈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많이 버무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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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 글을 쓰시면서 롤 모델이랄까, 영향 받은 스타일이 있을까요?
제가 접한 거의 모든 것에서 영향을 받았어요. 어릴 때부터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서사에 관한 것은 자연스럽게 접했고요. 글쓰기는 결국 논리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는 건데, 그런 부분은 소설보다 오히려 사회과학 책에서 많이 영향을 받았죠. 학생 때 논문 쓴 게 큰 도움이 됐어요. 논문을 재미있게 쓰면 소설이 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영화, 음악, 그 다음에 사회과학 서적. 문학이야 당연하고요. 그 모든 게 섞여 있는 거죠. 예컨대 이런 거예요. 007 시리즈를 보면 초반에 제임스 본드가 큰 액션을 한 판 치르고 난 다음에 오프닝 영상이 나오잖아요. 그런 구조를 배우는 거죠. 첫 문장이나 첫 문단에 임팩트가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 분위기를 전환하면서 새로 시작해야 된다. 그렇게 본다면 소설가는 굳이 소설에서 영향을 받는 게 아니라 음악, 영화, 미술 모든 것에서 다 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때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려는 마음에 없을 때에도 성장 과정에서 잡식성 동물처럼 이것저것 섭취했으니까. 모든 대중 문화와 사회과학, 심지어 논문까지도 뭉뚱 그려져서 (저만의) 이상한 B급 문화가 나오게 된 게 아닐까…. 

그중에서 여행은 어떤 비중을 차지할까요?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죠. 요즘 시대에 작가는 결국 디지털 노마드 잖아요. 노트북 한 대, 혹은 종이랑 연필만 있으면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저는 페루 쿠스코의 마추픽추에 갔을 때 지도나 영수증 뒷장에 볼펜으로 글을 쓰기도 했거든요. 작가는 어딜 가든지 아이디어를 얻고 영감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건 굉장히 큰 복이고 그걸 좀 활용하려고 했죠. 아무래도 같은 공간에서 계속 쓰다 보면 스스로 의욕이 꺾일 때가 있어요. 관성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여행을 가면 굉장히 좋은 에너지를 얻죠.

거주하는 장소의 변화는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사실 강력한 집중력이 있으면 그리 영향을 받지 않겠죠.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폭포 밑에서도 쓸 수가 있겠죠. 그런데 전업 작가로 산다는 건 일상 속에서도 계속 써야 한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저는 이제 작가 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일상 생활이 되어서 결국 공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급적이면 내게 영향을 주지 않는 공간이 좋아요. 예컨대, 시끄럽지 않은 곳, 사방이 피칠갑 되어 있지 않은 곳. 공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공간이 나를 방해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따지다 보면 결국 독립된 공간이 있어야 되는데, 그건 다시 집중력의 문제와 연결되죠. 감시자가 없으면 늘어지고 놀게 되니까. 결국 공간이 나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만 된다면, 나머지는 다 의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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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제 기준은 굉장히 명확해요. 제가 여행을 하는 목적 중 가장 큰 부분은 호기심을 채우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가보지 못한 데가 1순위예요. 물론 한 번 가 보고 너무 좋으면 또 갈 수도 있는데, 그건 작업이나 휴식을 위해서 가는 경우이고, 뭔가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지평을 넓히고 싶을 때는 반드시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요.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간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비슷할 때도 있지 않나요?
많죠. 어딜 가나 스타벅스가 있고, 맥도날드가 있으니까. 특히 유럽은 어느 도시든 중심부에 광장이 있고, 그 주변으로 정부 청사, 상점, 도서관이 자리하죠. 유럽만 그렇겠어요?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은 남미도 그렇고, 다 비슷하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언어가 다르고, 그 지역의 음식이 다르고, 날씨도 다르고, 풍경도 다르고. 여행자로서 제일 중요한 것은 놀랄 줄 아는 마음과 능력이거든요. 제가 존경하는 학생 때 은사님이 ‘놀랄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하셨어요. 아무리 좋은 걸 보더라도 다 같다고 여기면 사실 인생을 살아갈 재미도 없고 동기부여도 안 되는 거죠. 그렇다고 너무나 미묘한 차이에도 호들갑을 떠는 건 좀 문제가 있겠지만. 명백히 달라 보이는 것을 보고 심드렁해지지 않으려는 마음. 그게 글 쓰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안 그러면 다 똑같은 거잖아요. 하얀 것은 종이요, 까만 건 활자일텐데. 그 자음과 모음이 빚어낸 문장들 가운데 우주가 담겨 있는 거니까, 그 안에서 재미와 감동을 찾아낼 줄 아는 감식안과 선구안이 필요하죠.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 다닌 지 꽤 됐죠. 가장 마지막 여행에서 놀란 경험이 있다면?
마지막 여행은 40일간의 남미 여행이었어요. 놀랐던 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쿠스코에서 제 나름대로 굉장히 꼼꼼하게 검토해서 숙소를 골랐는데, 막상 가보니까 반지하 방이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학생 시절에 묵었던 하숙방이랑 구조가 너무 비슷한 거예요. 잘 고른다고 봤는데 왜 이 모양인가, 인생의 업보인가보다. 인간은 아무리 지상으로 올라와도 돌고 돌아서 언젠가는 본향으로 돌아갈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을 했죠. 그래도 학생 때 마음을 되새기면서 젊어지는 것 같고 좋더라고요. 몸은 비록 습기 때문에 축축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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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여러 글에서 첩보물과 여행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비밀 요원과 여행자의 공통점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창작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쓸 때 흥분해서 쓸수 있고 그 흥분이 독자에게도 전달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걸 쓰려고 해요. 좋아하다 보면 더 알게 되고 더 알게 되면 신빙성이 갖춰지니까요. 여행자와 첩보원의 공통점은 둘 다 가면을 쓴다는 거죠. 첩보원은 타지에서 다른 페르소나가 되는 거잖아요. 우리가 여행을 할 때도 비슷해요. 서울에서는 김 대리, 최 사원인데 시칠리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면 본연의 모습의 나올 수도 있고 아니면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꼬레아노’가 되는 거죠. 서울에 있으면 전혀 그런 행동을 안 하지만, 굉장히 자유분방한 사람이 되어서 노래가 나오면 춤을 출 수도 있고. 여행을 할 땐 가는 곳마다 공간의 영향을 받아서 약간은 다른 사람이 되잖아요. 첩보원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점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겠죠.

작가님은 여행할 때 어떤 편이세요?
저는 여행을 대부분 혼자 다녔어요. 혼자 있다 보니까 돌아다니면서 모르는 사람한테 말할 수도 없고 혼잣말을 할 수도 없으니 본의 아니게 사색적으로 변하죠. 그러다 보면 생각은 많아지는데 표현할 길은 없으니까 달리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괜히 다이어리를 꺼내서 끄적거리고. 그러다가 **〈베를린 일기〉 같은 걸 쓰기로 하고 그러는 거죠. 서울에서는 청탁 받은 글을 쓰기도 벅찬데 여행을 하면 왜 남이 시키지도 않은 글을 쓸까 생각을 해봤는데, 여행을 가면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아니면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그게 딱 세 가지예요.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 한 잔하고 달리기하고, 글 쓰고, 저녁에 쉬거나 술 한잔하고. 사실은 이게 제가 진짜 영위하고 싶은 삶이거든요. 그걸 일상의 공간인 서울에서는 안 하고 여행을 가면 오전 중에 원고 작업을 하는 거죠. 오후 1시를 넘어가면 너무 덥기 때문에 수영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수영을 하고 책을 읽고. 4시 정도 되면 약간 선선해져요. 그러면 달리는 거죠. 저녁에는 음악 들으면서 쉬고. 숙소를 빌려서 장기 체류를 했는데, 딱히 돈 쓸 데도 없고 크게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모로 참 적당했어요. 그때 고친 원고가 ***〈꽈배기의 맛〉이었습니다. 원래 소설을 쓰러 갔는데 너무 더우니까 소설이 안 써져서 갖고 있던 에세이 원고를 고쳐서 낸 게 그 작품이었던 거죠.

그 책에서 ‘꽈배기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꽈배기 같은 여행은 뭘까요?
‘대단한 요리사가 하는 음식은 아니지만, 길거리에서도, 팔고 시장에서도 팔고, 길을 가다가 눈에 띄면 손쉽게 집어 먹을 수 있고. 그런데 막상 집에서 내가 하려고 하면 꺼려지는. 그래서 남이 만들어놓은 걸 보면 한 번씩 되는, 그런 게 꽈배기다. 나는 명필가도 아니고 명문장가도 아니지만, 한 번씩 생각나는, 서점에서 보게 되면 이 양반 책이 또 나왔네 하게 되는 글. 그런데 막상 내가 쓰기엔 부끄럽고 이렇게 쓰고 싶진 않은데, 한번씩은 읽고 싶네. 이런 에세이의 매력이 꽈배기의 맛이다’ 대충 이렇게 썼거든요. 기행문으로 돌아와서, 나는 베를린에서 가면 좋은 거 보고 좋은 거 먹고 좋은 경험을 하고 싶지만, (남미도 마찬가지고요) 누군가는 이런 여행을 해서 내 여가 시간을 조금 재미있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나 대신 이런 여행을 해줬으면 좋겠네, 그런 게 꽈배기 같은 여행, 꽈배기 같은 기행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베를린 일기> 최민석, 민음사. 2014년 가을부터 90일간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베를린에 머물며 하루도 빠짐없이 쓴 일기를 모아 엮은 책이다.

*** <꽈배기의 맛> 최민석, 북스톤. 2012년 발간한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의 개정판으로, 2017년 2편 <꽈배기의 멋>과 함께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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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일기〉와 ****〈40일간의 남미 일주〉. 두 작품이 5년 정도 차이를 두고 발간되었는데요. (남미 전에는 〈피츠제럴드〉가 있었죠.) 그 사이에 작가로서, 그리고 여행자로서 변화된 지점이 있었다면?
작가로서는 의욕 감퇴. 사실 〈베를린 일기〉를 쓸 때도 의욕이 없었는데, 거기서 의욕이 더 빠졌죠. 다른 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어깨에 힘을 좀 빼고 거품을걷어내야에세이를쓸수있거든요. 에세이는 어차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의 글쓰기에요. 소설은 내가 인물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고, 마주치게 하거나 엇갈리게 할 수도 있는데, 에세이는 경험한 바를 토대로 쓰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의지를 갖고 어딘가를 갔다고 해도 거기서 겪는 일은 통제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에세이를 쓸 때는 마음을 비우게 돼요. 특히 기행문은. 담담하게 쓰자, 그런 마음이고요. 예컨대 멕시코에 가면 멕시코 시티에서 뭘 경험하고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San Cristóbal de las Casas)에 가서 이걸 경험해야지 라는 건 나의 취재 계획인거고, 거기서 예상치 못한 일을 겪거나 아무 일도 안 겪는 건 실제 발생하는 일인 거죠. 에세이는 아무리 계획이 훌륭하다 해도 그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단행본 계약금을 받더라도 안 쓰고 통장에 넣어둡니다. 나중에 글이 너무 안 나오면 돌려줘야 하니까요.

‘호구의 여행’. 여행 에세이나 픽세이를 읽으면서 일관되게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사건 사고에 휘말리며, 호구가 되어가는 등장인물을 볼 수 있는데요. ‘호구’를 통해 드러내고 싶은 의미가 있나요?
그건 신의 영역인 것 같아요.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 제일 좋은 게 뭐냐하면, 내가불행한 일을 겪더라도 적어도 글감 하나는 건졌다는 거예요. 제가 좀 불행한 일을 많이 겪거든요. 오늘 인터뷰하기 직전에도 신용카드를 잃어버려서 분실 신고를 했잖아요. 작가가 되기 전에는 그런 일을 겪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작가가 되고 난 이후에는 불행한 일을 겪더라도 ‘오늘 또 글감 하나를 건졌구나’ 라고 생각하는 거죠. 누가 저에게 위 내시경을 수면을 하지 않고 그냥 해보라는 거예요. 좋은  글감이 될 거라고. 그래서 한 번 해봤거든요.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말해준 분이 저희 장모님이에요. 단골 카페 사장님은 코로나 확진을 받고 수용 시설에 몇 주 동안 격리되었다가 돌아왔는데, 저한테 작가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한 경험이라고 하더라고요. 본인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다들 꼭 저한테 얘기를 해요. 아무튼 불행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는 생긴 것 같아요. 모든 게 글감이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제 인생에 좋은 일도 많습니다. 제가 안 쓸 뿐이죠.

왜 안 쓰십니까.

독자들이 배 아파할까 봐요. 순문학은 원래 실패의 이야기이고 고통의 이야기거든요. 자기 계발서가 아니잖아요.

**** <40일간의 남미 일주> 최민석, 해냄. 멕시코부터 콜롬비아,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6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작가 특유의 유머 코드로 그려낸 여행 에세이다.

***** 멕시코 중부 치아파스(Chiapas)주의 고산지대에 위치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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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입니다. 소설가의 작업은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소설가는 창작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이런 소재를 가지고 창작을 할 순 있겠죠. 가끔씩 디스토피아적인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한 번 빚어볼까 라는 생각은 하죠. 예컨대, 나무젓가락 사용 금지령이 내려서 ‘나무 젓가락의 교환 가치가 다이아몬드 10캐럿 이상인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집에 나무젓가락을 갖고 있는 것이 발견되면 무기 징역에 처해진다. 그러나 나무젓가락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잔존하는 나무젓가락을 찾기 위해 자기들만의 모험과 거래가 횡행하고 있다.’ 그런 가정에 상상력을 덧붙여볼 수 있는 거죠. 사실 글 쓰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지속 가능한 여행을 하는 한 명의 사람이 되는 거예요. 글을 쓰는 건 말하는 거고 표현하는 거잖아요. 그것보다 실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실천하지 않고 표현하는 것보다, 표현하지 않고 실천하는 게 낫다. “Shut the mouth,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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