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음식 일러스트

Singapore’s Historical Restaurants
싱가포르 노포의 맛을 찾아서-칠리크랩부터 논야 요리까지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페라나칸 식당부터 칠리크랩의 원조 식당까지 싱가포르 노포 3곳을 소개한다.

  • 피치 바이 매거진 편집부
  • 일러스트레이션 김은빈
  • 제작 협조 한아세안센터

페라나칸 가정식의 전통, 구안 호 순

70년이 넘는 역사의 구안 호 순(Guan Hoe Soon)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페라나칸(Peranakan) 식당이다. 페라나칸 가정에서 요리를 배운 창업자 얍 치 쿠이(Yap Chee Quee)가 시작했으며 그의 세 아들인 아관(Guan), 아호(Hoe), 아순(Soon)의 이름을 하나씩 따와 지었다고 한다. 카통 지역 주치엣(Joo Chiat)의 한적한 거리에 자리한 이 노포는 3대에 걸친 세월이 느껴지는 빈티지한 인테리어와 친근한 매력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한때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인 리콴유 전 총리도 이곳을 자주 찾아왔다고. 격식보다는 음식 자체의 맛에 집중한 분위기라 편안하게 식사하기 좋으며, 가격대도 합리적이다. 점심과 저녁 시간대에는 현지인과 미식가로 붐벼 자리가 꽉 차기 때문에 예약을 해두는 게 좋다. 
구안 호 순은 싱가포르 페라나칸 가정식을 대표하는 식당에 걸맞게 정통 논야(Nyonya) 요리를 두루 선보인다. 산뜻한 향신료와 코코넛 밀크로 맛을 낸 카레 야채 스튜 사요르 로데(Sayor Lodeh)부터, 아얌 부아 클루악(Ayam Buah Keluak)이라고 불리는 열대 견과 소스를 넣은 닭고기 요리까지 메뉴 구성이 다양하다. 그중 아얌 부아 클루악은 이 식당에서 가장 인기 높은 메뉴다. 부드러운 닭고기와 톡 쏘는 소스의 새콤함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맛이 일품이다. 이외에도 매콤한 새우 튀김 우당 아삼 페다스(Udang Assam Pedas), 타마린드 소스로 맛을 낸 생선찜 등 페라나칸 가정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싱가포르 고유의 페라나칸 음식을 맛보고 싶은 여행자라면, 구안 호 순은 놓쳐선 안 될 노포다.

창업연도 : 1953년

주소 : 200 Joo Chiat Rd, #01-01, Singapore 427471

싱가포르식 인도 요리의 본거지, 잠잠

잠잠(Zam Zam)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인도식 무슬림 식당이다. 캄퐁 글램(Kampong Glam) 지역의 술탄 모스크 맞은편에 위치하며, 100년 넘게 한자리에서 무슬림 커뮤니티의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창업자는 인도 케랄라(Kerala) 출신의 하지 마흐무드(Haji Mahmud)인데, 오늘날에는 그의 손자 세대가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개업 이래로 전수된 조리 비법을 그대로 고수하는 덕분에 세기를 뛰어넘는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참고로 ‘잠잠’은 이슬람 성지 순례 때 마시는 성수(聖水)에서 유래한 것으로, 무슬림 사회에서는 특별한 상징성을 지닌 단어다.
세기를 뛰어넘은 노포답게 외관과 실내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철판에 지진 기름과 향신료 내음이 옷에 배일 정도로 강렬하게 풍겨온다. 오래된 나무 탁자들마다 현지인과 관광객이 뒤섞여 어깨를 맞대고 앉아 식사를 즐긴다. 잠잠의 간판 메뉴는 단연 무르타박(Murtabak)이다. 무르타박은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펼친 프라타에 양념한 다진 고기와 달걀을 듬뿍 넣고 반으로 접어 노릇하게 지져낸 것이다. 특히 잠잠의 조리법은 이곳의 무르타박을 더 유명하게 하는데 일조했다. 구운 프라타를 한 장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속재료를 넉넉히 채운 다음 다시 반죽으로 덮어 두 겹으로 부쳐낸다. 이렇게 완성된 무트타박은 더욱 바삭한 식감과 푸짐한 양을 자랑한다. 속재료에 따라 양고기, 닭고기, 소고기, 생선 무르타박을 주문할 수 있고, 사이즈도 작은 것부터 대형까지 준비되어 있다. 함께 나오는 진한 카레 소스에 찍어 먹으면 고소하고 매콤한 풍미가 배가되니 꼭 시도해보자. 무르타박 외에도 향신료를 넣어 익힌 밥에 양고기나 치킨 등의 고명을 얹은 니시 브리야니(Nasi Briyani)도 별미다. 매일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영업하는 덕분에 여행 중 언제든 방문해서 한끼를 마무리할 수 있다. 

창업연도 : 1908년

주소 : 697-699 N Bridge Rd, Singapore 198675 창업연도

칠리 크랩의 원조, 롤랜드 레스토랑

롤랜드 레스토랑(Roland Restaurant)은 칠리 크랩(Chilli Crab) 원조의 명맥을 잇는 곳이다. 현재 사장인 롤랜드 림(Roland Lim)은 1950년대 중반 칠리 크랩을 처음 선보인 고(故) 체 얌 티안(Cher Yam Tian)의 아들이다. 원래 그의 부모님은 1956년에 싱가포르 이스트코스트의 해변 노점에서 칠리 크랩을 세상에 처음 선보였고, 전설적인 식당 팜 비치 시푸드(Palm Beach Seafood)를 열어 크게 성공한 장본인이다. 1980년대 중반 부모가 가게를 매각하고 뉴질랜드로 이주하는 바람에 한동안 원조의 명맥이 끊길 뻔했는데, 아들 롤랜드가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와 2000년에 레스토랑을 열어 가문의 칠리 크랩을 부활시켰다.
이스트코스트의 마린 퍼레이드(Marine Parade)에 들어선 롤랜드 레스토랑은 최대 1,000명을 수용하는 큰 규모다. 넓은 원탁 테이블이 빼곡히 놓인 공간은 1970~80년대식 레스토랑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메뉴 구성은 전형적인 싱가포르식 해산물 요리다. 그중 단연 싱가포르의 상징 같은 요리인 칠리 크랩을 맛봐야 한다. 창업주의 어머니에게 전수받은 오리지널 비법 소스로 조리한 칠리 크랩은 스리랑카산 게와 특제 칠리 소스의 조화가 일품이다. 고추 페이스트와 토마토 케첩이 적절히 어우러진 소스는 새콤달콤한 맛이 혀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달걀로 농도를 맞추기 때문에 순하면서도 깊은 매운맛을 낸다. 칠리 크랩과 함께 나오는 바삭한 튀김 빵을 남은 소스에 푹 적셔 먹으면 바닥까지 깨끗하게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될 것이다. 어머니 시절부터 인기였던 블랙 소스 새우(black sauce prawns), 칠리 새조개(chilli cockles), 꼴뚜기 튀김(Crispy Baby Squids) 등의 요리도 여전히 메뉴판에 올라 있으니 이왕이면 다양하고 푸짐하게 식사를 즐겨보자. 

창업연도 : 1956년

주소 : 89 Marine Parade Central, #06-750, Singapore 440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