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발효조미료를 만드는 카리테의 쌀누룩

The Taste of Japanese Fermented Food
쌀누룩으로 빚은 사계절의 맛

손쉽게 만들어 빠르게 소비되는 맛이 아닌, 시간을 들여 길러낸 깊은 맛을 전하는 손길이 있다. 해남산 무농약 쌀로 쌀누룩을 띄우고 제철 농산물에 발효의 시간을 더해 조미료를 만드는 작은 제작소 카리테. 선조의 지혜로 오늘의 식탁을 건강하게 꾸려내는 카리테 대표 타카노 아이코와 얘기를 나눴다.

카리테에 관해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려요. 
카리테는 일본식 쌀누룩 조미료 제작소입니다. ’쌀누룩, 제철 농산물, 발효‘를 테마로 새로운 쌀누룩 발효 조미료를 연구하고, 생산합니다. 해남산 무농약 쌀을 사용해 따끈따끈한 쌀 누룩(코우지)을 띄우며, 일본식 미소 된장을 비롯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고 있어요.

‘카리테’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먹을 거리를 뜻하는 양식(糧食)의 한자어 ‘양’을 옛날 일본어로 ‘카리테’라고 읽습니다. 카리테는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먹거리’를 뜻하지만, 확장해서 해석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음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부터 옛것을 활용하고 현지 식자재를 이용해 자연과 전통을 지키는 지속 가능한 삶까지, 발효 조미료를 통해 우리만의 ‘카리테’를 전하고자 합니다.

카리테에서 만드는 일본식 쌀누룩과 발효 조미료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일본식 쌀누룩을 코우지(糀)라고 합니다. 코우지는 일본에서 된장, 간장, 청주 등을 만들 때 쓰는 발효 식품의 기본 재료예요. 카리테의 코우지는 해남산 무농약 쌀을 쪄서 만든 고두밥에 *누룩곰팡이 황국균을 뿌리고 약 48시간 동안 일정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서 만들어요. 그렇게 만든 쌀누룩은 건강에 유익한 효소를 갖게 되죠. 이 쌀누룩을 사용해서 미소코우지, 시오코우지, 아마코우지 등 다양한 일본식 조미료를 만듭니다. 쌀누룩의 효소는 원재료의 건강한 성분을 극대화하고, 식재료가 가진 단맛이나 감칠맛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요. 더불어 소화 작용을 도와주는 역할도 합니다. 

*누룩곰팡이는 발효식품 제조에 널리 사용되는 곰팡이로, 주로 쌀, 보리, 밀 등 곡물에 접종해 술, 된장, 간장 등을 만드는 데 활용한다.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는 당화력과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효소 활성이 뛰어나며, 감칠맛과 단맛을 부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 일본식 발효 조미료를 만들게 된 스토리가 궁금해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10여 년 전에는 대형마트에서 미소된장이나 우매보시 같은 극소수의 일본식 조미료만 구할 수 있었어요. 그마저도 화학조미료나 착색료를 첨가한 공장식 대량생산 상품이 대부분이었고요. 일본 본가에 갈 때마다 아이도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재료로 만든 조미료를 챙겨오곤 했는데요, 매번 그러기도 번거로워서 직접 만들어보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때부터 쌀누룩을 배양하고 여러 조미료를 만들어보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발효 조미료 연구는 어떻게 이뤄지나요? 
선조들의 지혜와 노하우가 담긴 전통 방식에서 얻은 영감을 토대로, 일단 직접 만들어보고 먹어봅니다. 그리고 나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미세하게 조정하는 과정을 거치죠. 일본에서 발효에 관한 강의를 듣기도 하고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발효 방식도 공부하며 카리테만의 새로운 맛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카리테의 발효 조미료를 사용해서 만들 수 있는 요리 중 가장 좋아하는 요리법 한 가지를 소개해주세요. 
시오코우지를 사용한 일본식 채소절임 아사즈케(浅漬け)를 좋아합니다. 원하는 채소에 시오코우지를 적당량 발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음식이에요. 취향에 따라 다시마나 유자청, 청양고추, 참깨 등을 첨가해 전혀 다른 느낌으로 즐길 수 있는 게 팁이죠.
 
해남의 무농약 쌀을 비롯해 국내 여러 산지의 식재료를 활용하는 게 인상 깊어요. 특정 산지를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짧은 시간에 대량 생산된 식재료가 아닌, 전통 방식으로 만든 식재료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노력이 담긴 맛의 깊이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카리테의 모든 조미료를 만드는 데 기본이 되는 소금도 10년 이상 숙성한 전라남도 신안산 천일염을 사용하고 있어요. 이외에도 경상북도 영양군의 땅콩과 녹두, 충청남도 논산 양조장의 간장, 경상남도 사천산 토마토 등 전국 각지의 좋은 농산품을 사용합니다.

비건 식당 큔과 협업으로 절기마다 <골라 담은 발효박스>를 선보이는데, 어떻게 진행하게 된 프로젝트인가요?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에 자리한 비건 식당 큔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방식으로 발효 식료품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에요. 초창기부터 큔의 메뉴에 카리테의 쌀누룩 조미료가 활용되었어요. 일부 제품을 매장에서 판매하기도 했는데요, 코로나 팬데믹 동안 오프라인 경험이 제한되면서 택배를 이용해 저희 조미료를 소개하는 발효박스를 기획하게 됐죠. 골라 담은 발효박스는 계절마다 다른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도록 매달 다른 상품으로 구성하고 있어요. 
 
겨울마다 방학을 선언하고 일본에 머물다 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일본에선 주로 어떤 일상을 보내다 오나요? 
친정에서 가족과 함께 휴식의 시간을 보내요. 옛날 방식으로 미소나 간장, 청주를 만드는 일본 현지의 양조장이나 제조소를 찾아가서 배움의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또는 여행지가 있나요?

제 고향 오사카 바로 옆에 있는 교토요. 너무 유명한 관광지이긴 하지만, 옛날에는 쌀누룩을 제조하는 코우지 가게가 많이 모여 있던 곳이기도 해요. 구석구석에 매력이 있는 장소가 많고, 갈 때마다 옛것과 새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도시예요. 발효와 식료품에 관심이 많다면 유기농 식료품과 생활 잡화를 파는 가게 스미레야(すみれや)와 일본 각지에서 엄선한 발효 된장을 판매하는 쿠라다이 미소(代味蔵噌)에 들러보길 추천해요.

발효 음식과 미식을 테마로 앞으로 여행해보고 싶은 나라가 있다면?

발효 음식은 선조들의 지혜,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냉장고 같은 저장 시설이 없던 시절, 식자재를 더 오랜 시간 즐기기 위한 고민과 노하우를 담아 탄생한 전통이니까요. 그래서 세계 각국의 발효 음식을 최대한 많이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요즘에는 대만이나 태국 등 아시아권 나라의 발효 음식을 찾아 떠나고 싶어요. 한국과 일본도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면이 많은 것처럼 각 나라마다 새로운 발효 전통을 발견할 수 있겠죠?
 
앞으로 소개하고 싶은 발효 조미료 또는 재밌는 계획이 있나요?
많은 사람이 쌀누룩 조미료를 더 쉽게 접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뿌리기만 하면 되는 가루 형태의 시즈닝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 첫걸음으로 최근 ‘스파이스 미소 듀카’라는 상품을 출시했고요. 앞으로 허브가 들어간 버전, 매콤한 버전 등 다양한 상품도 출시할 계획입니다. 이 같은 쌀누룩 조미료의 다양한 활용법을 소개하는 강의 프로그램도 하루빨리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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